성경의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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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 기독교인의 삶이란 무엇인가

기독교인의 삶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과 그 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알고 열매를 맺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로마서 7:4
에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씨 뿌리는 비유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들은 자들을 네 종류로 구분하신다.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열매를 맺지 못한데 반해, 마지막의 경우 칭찬을 받을만한 자로,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마태복음 13:23).

따라서 하나님께서 기독교인에게 계획하시는 것은 단지 믿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것이다. 같은 종류의 나무가 되거나 전에 준 것과 같은 열매를 주어야 한다. 우리의 생산성은 하나님께 중요하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저 삶을 살기를 바라시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독특하게 만드셨고, 독특한 재능을 주셨고, 나아가서 열매를 맺으라는 임무도 주셨다. 우리는 곧 이렇게 하는 방법을 배우겠고, 이것을 마음에 새기고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젊으나 나이가 들었거나, 가난하거나 부유하거나, 무지하거나 교육을 많이 받았거나 자녀 하나하나에게 재능을 부여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독특한 재능을 주셨고, 그 재능이 열매 맺기를 바라신다. 요한복음 15장에서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15: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요한복음 15:1-2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아버지께서는 자녀가 열매를 맺을 때 기뻐하신다. 그 분이 열매를 맺는 가지는 가지를 치고 깨끗하게 하시는 특별 관리를 하셔서 더 열매를 맺게 하심을 보라! 아버지께서는 그저 포도나무 가지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다… 그 분은 더 풍성한 열매를 맺는 가지, 그 가능성을 모두 열매 맺는 가지를 원하신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이 게으름을 피우며 옆전에 물러나 누군가 즉, 자신들은 “전문가”가 아니니 “전문가”가 나타나 대신 “통제해” 주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바울과 다른 제자들인 어부들 역시 “전문가”가 아니었다. 그들은 신학교를 졸업하지도 않았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들이 잘하는 일이라고는 고기잡이였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믿기는 하지만 삶에 눈에 띄는 변화는 없다. 그러나 기독교인의 삶이 변화가 없고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하나님과 그 분의 말씀에 대한 열정이 있는 기독교인은 실수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들도 실수를 한다. 하지만 열정적인 기독교인은 다수가 “흐름을 따라… 구일마다 교회 건물에 가서 신도석에 앉아 찬송하고 설교 듣고 집에 와서 다음 일요일까지 잊어버리는 거야”라고 말하며 하는대로 따라가지 않는다. 열정적인 기독교인에게 타협은 없다. 안주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분 안에서 성장하기를 원한다. 그 분과 그 분의 아들과 더 가까워지기를 원한다. 그리스도를 자신들의 삶에서 가능한 한 많이 나타내려고 한다. 열정적인 기독교인은 열매와 그리스도의 비전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도 그들과 같이 되기를 원하신다. 여러분이 열정적인 기독교인, 다르게 말해, 하나님에 대한 열정이 있는, 미지근하지 (요한계시록 3:15) 않고, 따뜻한 기독교인이 되기를 원하신다. 열매를 많이 맺는 가지가 되려면, 꽃과 열매를 최대한 많이 맺어야 한다. 이것이 기독교인의 삶의 핵심이다.

열매가 무엇인가?

단순하게 말하면, 열매는 변화된 삶, 그리스도 중심의 삶, 우리 자신은 죽고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살아계신 삶(갈라디아서 2:19-20), 자신이나 사람들보다 하나님을 만족시켜드리는 길을 찾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중심이며 가장 중요한 부분이 하나님인 삶이다. 성경 말씀을 읽어보자.

갈라디아서 5:22-25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여기에서 성령은, 우리 안의 그리스도, 새 사람을 의미한다. 새로운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열매, 그리스도께서 가지신 새 사람의 특성을 맺는다. 에베소서 2:10을 읽어보자.

에베소서 2: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가 가야 할 좋은 길을 예비해 두셨다. 심어져서 열매를 맺는 운명의 나무처럼 우리 각자에게 특별한 선물도 주셨다.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께서 이미 준비해 두신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열매를 맺는 길이다. 베드로전서 4:7-11 말씀을 읽어보자.

베드로전서 4: 7-11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이 구절에서 “하라”고 하신 내용은 매우 다양하다. 기도를 할 때 근신하라. 서로 뜨겁게 사랑하라.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라. 각각 은사 받은 대로 하라는 말씀도 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 각각에게 특별한 은사를 주셨다. 우리 몸의 각 지체가 특별하고 각각 맡은 역할이 있듯,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 두셨으며, 그 곳에서 각자의 특별한 역할을 하도록 은사를 주셨다. (고린도전서 12:12-27) 그리고 베드로가 여기에서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한 가지, 바로 역할이다! 하나님께서 은사를 주시지 않은 사람이 없다. 그 분은 목사나 사제에게만 은사를 주신 것이 아니다. 이 구절은 기독교인의 공동체 내의 특정 집단의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여러분을 포함한 모든 기독교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서로 보살피라”고 말씀하신다. 은사는 잠재된 상태로 두라고 주신 것이 아니다! 서로를 보살피라고 주셨다. 나는 여러분을 보살피고, 여러분은 나를 보살피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사역(minister)”이라는 단어는 종교적 역할을 하는 누군가를 묘사할 때 쓴다. 따라서 믿는 자들의 공동체에서 목사나 사제를 “사역자”라 부른다. 그렇다면 다른 모든 사람들은 목사나 사역자 혹은 성직에 있는 사람들의 보살핌을 받기만 하고 보살피지 말아야 하며, 사역자들만 사역을 해야 할까? 이것은 음으로 양으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내재되어 있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 생각은 하나님께서 주신 생각도 아니며, 성경에에 나온 생각도 아니다! 성경에서는 우리 각자가 하나님께 특별한 능력을 받았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 안에 특별히 두셨다는 것이다. 성경 말씀에 성직자나 평신도를 언급하는 내용은 없다. 성경 말씀처럼,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제사장이다. 베드로가 이것을 얼마나 잘 묘사했는지 읽어보자.

베드로전서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전서 2: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우리 각자가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에 맡는 역할을 하고 서로를 돌보게 되어 있다. 베드로전서 4:7-11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은사를 주셨든 그것으로 열심히 일하라고 쓰여있다. 여러분의 은사에 집중해서 그것을 열심히 훈련하라. 여러분이 하나씩 은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제”이건 아니건 관계 없다! 그게 사실이다! 베드로가 말하는 바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에 따라 열심히 봉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해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는데, 은사를 열심히 사용하는 것이 주 예수 그리스도와 살아있는 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빌립보서 1:9-11 말씀을 읽어보자.

빌립보서 1:9-11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의의 열매는 우리의 힘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가득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그 결과는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다. 요한복음 15장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 그 분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다.

요한복음 15:4-5, 8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열매를 맺으려면, 포도나무에 거해야 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포도나무가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포도나무이시다. 포도나무 안에서 거하지 않으면, 가지가 열매를 맺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도 똑같아서, 가지인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거해야 열매를 맺는다. 이 경우에 가지는 포도나무를 위해서만 열매를 맺을 수 있다. 포도나무가 우리를 통해 살기 때문에 열매를 맺기 때문에,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거해야 우리를 통해 분명하게 나타나신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좋은 일을 이행하고 추구해야 우리가 기쁘게 해드리고 싶은 하나님과의 열정적인 관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일 자체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며, 그리스도와 함께 그 분 안에 거하고, 빌립보서에서 말씀하셨듯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열매를 맺게 된다.

여기에서 조금 더 니아가, 그리스도께서는 거짓 선지자에 대해 말씀하셨고 그들의 열매로 우리가 그들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마태복음 7:15-20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자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르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비슷한 표현으로, 거짓 선지자 (마태복음 7:15), 거짓 그리스도 (마태복음 24:24), 거짓 사도 (고린도후서 11:13), 거짓 형제 (갈라디아서 2:4, 고린도후서 11:20), 거짓 선생 (베드로후서 2:1), 속이는 일꾼 (고린도후서 11:13) 등이 있다. 이러한 사람들과 같은 사람들을 알아낼 방법이 있으니 그것은 열매이다! 좋은 열매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온다. 하나님이나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 하더라도, 다른 나무는 거짓 열매를 맺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내 형제이자 자매인 여러분을 독려해서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따르고, 열정적으로 살아계신 주님과의 관계를 성장시켜서, 그 분께서 여러분을 위해 준비하신 은사를 열심히 사용하라고 말하고 싶다. 성령의 열매는 그 나무가 성령, 새 본성, 우리 안의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면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 안의 그리스도가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열매와 가지치기

정원 일에 대해 별로 알지 못하지만, 열매를 맺으려면 수시로 가지치기를 해야 한다는 것은 학교에서 배웠다. 그러나 그 의미만이 전부가 아니다. 위키피디아(http://en.wikipedia.org/wiki/Pruning참조) 에서 찾은 다음의 내용을 확인해보자.

“경과 정원 일에서 가지치기는 병들고 생산성이 없거나 식물에서 원하지 않는 부분을 제거하는 기술이다. 가지치기의 목적은 식물 성장을 제어하고 방향을 잡아줌으로서 식물의 모양을 만들고 건강하게 자라도록 해주며 꽃과 식물의 수확량을 증가하기 위함이다. 잘못된 가지치기를 한 식물은 병들고 원치 않는 방향으로 자랄 수 있기 때문에, 적절한 가지치기는 예술로서의 하나의 기술과 같다.”

모든 식물에는 가지치기가 필요하다. 모든 식물은 가지치기 해주고 원하는 방향으로 자라도록 이끌어주고, 건강하게 돌보아주고, 병든 부분을 제거해주고 깨끗하게 해주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해줄 농부가 필요하다. 이 사실은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포도나무의 가지인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우리도 가지치기가 필요하고 돌보아줄 농부가 필요하다. 요한복음 15장을 읽어보자.

요한복음15:1-2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가지치고 돌보아주시는 분은 아버지이시다. 다시 말하지만, 가지치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기억하라! 다행히도 우리는 돌보아주실 아버지께서 계시다. 그 분은 좋은 농부처럼 선하고 세심하게 돌보아 주시고, 간섭하시고 우리 성장의 방향을 잡아주시고 장애물을 제거해 주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해주셔서 우리가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해주신다! 경이롭지 않은가?! 열매를 맺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 거하여야 가능하고, 최대한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우리의 가지를 치시는 일이다. 우리가 할 일은 포도나무 안에 거하는 것이고, 우리의 생산성 증대를 위해 가지치기를 하고 돌보는 것이 아버지의 일이다.

히브리서 12:11도 같은 내용을 다르게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해당 구절을 읽어보자.

히브리서 12: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글쓴이는 징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징계를 받을 당시에는 즐겁지 않다고 설명한다. 사실 징계는 고통스럽다! 가지치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농부가 가지치기를 할 때, 실물의 일부를 잘라야 한다. 식물의 살아있는 부분에 유익하지 않은 죽은 부분을 제거한다. 가지치기는 잘라야 한다는 의미이다! 정상적이어야 할 것이 더 이상 비정상이 되기 전에 말이다. 농부는 간섭하고 잘라야 한다. 징계도 같지 않은가? 우리는 아이들을 훈계하고 우리 식물의 가지를 친다. 두 가지 행위 모두 그 목적은, 아이들이 잘 되고, 식물이 더 열매를 많이 맺게 하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 자녀를 징계하실 때, 당시에는 고통스럽겠지만 교훈을 주어 히브리서 말씀처럼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함일 뿐이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분은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신다. 그러므로 여기에서의 교훈은, 식물의 가지를 쳐서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는 농부가 있듯, 우리는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이 계셔서 가지도 쳐주시고 그리스도 안에 거해서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해주신다는 점이다.

과일, 우선순위와 결실하지 못함

앞에서 보았듯이, 열매를 많이 맺는 것은 하나님께 많은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 우리는 포도나무 안에 거해야 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해야 한다. 열정적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고자 하는 바램을 가지고 그 분을 기쁘게 해드려야 한다. 이것이 우리 삶의 목적이 되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따라서 분명히 우리 삶의 최우선 순위에 하나님과 그 분의 일이 있어야 한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우리가 열매를 맺는데 방해가 되는 것이 있을 때, 그것은 포도나무인 그리스도에서 다른 것으로 우리의 주의를 돌릴 위험이 있다는 말이다. 마태복음 6:24-34에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6:24-3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하지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을 걱정하는 것은 이방인, 믿음이 없는 자이다. 우리는 그러지 말아야 한다. 우리에게 첫 째이자 가장 중요한 일이자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오늘날 수백 가지의 일들이 우리의 관심을 끌고자 하고 우리의 시간을 잡아먹는다. 다른 어느 때보다 우리는 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지금처럼 한 개인에게 많은 선택권이 주어졌던 세대는 없었다. TV를 켜면 수백 개의 채널이 있다. 인터넷에 접속하면 수천 개의 웹사이트 중에 선택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개인이 이렇게 많은 선택권을 가지고 자유롭게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세대는 없었다. 그러나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의 시간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싸워야 한다. 이 선택사항들은 우리의 우선순위 목록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싸운다. 나는 영화보는 것을 좋아하지만, 너무 많이 보다보면 시간이 많이 흘러서 하나님과 시간을 충분히 보내지 못한 것과 하나님께서 주신 일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하게 된다. 인터넷으로 여러 웹사이트를 찾아보는 것을 좋아하지만,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 하나님과 교제할 시간이 없어진다. 내가 가장 노력해야 하고 진정으로 가장 가치 있는 일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기 때문에 좋아하는 일을 할 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다양한 선택의 기로에 선 이 세대에, 우리는 최고 우선순위, 우리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많은 열매를 맺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다. 하나님을 알고 포도나무인 그리스도와 교제하고 아버지의 영광 앞에 열매를 맺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이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세 번째 부류를 다시 살펴보자.

마가복음 4:3-4, 7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였고”

그리고 설명을 읽어보자.

마가복음 4: 14, 18-19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 또 어떤 이는 가시떨기에 뿌려진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요

말씀이 뿌려졌으나 불모의 식물처럼 결실하지 못했다. 왜 그럴까? 다른 것들이 들어와 말씀을 막았기 때문이다. 다른 것들이 무엇이었는가? 세상의 염려, 재물의 유혹, 기타 욕심 등이다. 이들은 모두 열매를 훔치는 방해 요소이며 열매를 완전히 훔쳐갔다. 우리는 결국 삶에서 누구를 섬길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우리 삶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결실하지 못하는 방해요소나 세상의 것에 삶을 허비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 삶을 하나님의 영광의 열매를 맺기 위해 쓸 것인가? 여러분의 선택은 어느 쪽인가? 나는 후자를 택했다.

타소스 키울라초글루

 

부록

앞서 살펴본 구절 외에 열매에 관한 다른 구절들이 있다.

골로새서1:1-10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종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그는 너희를 위한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 성령 안에서 너희 사랑을 우리에게 알린 자니라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유다서 1:11-12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 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따라 멸망을 받았도다 그들은 기탄 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희의 애찬에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베드로후서 1:5-8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야고보서 3:17-18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디도서 3:13-14
“율법교사 세나와 및 아볼로를 급히 먼저 보내어 그들로 부족함이 없게 하고 또 우리 사람들도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을 준비하는 좋은 일에 힘 쓰기를 배우게 하라

에베소서 5:8-11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인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로마서 7:4-5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은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로마서 6:20-22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