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진리

신약 성경의 경고  (PDF) PDF 버전

히브리서 10:23-29, 35-39: “우리가 의도적으로 죄를 짓는 경우”, “뒤로 물러가는 자가 있으면”

히브리서를 계속함에, 히브리서 10에서 우리는 더 심각한 경고를 볼수 있습니다. 다음을 읽어보겠습니다:

히브리서 10:23-29, 35-39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 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구문이 명백하게 답변하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근본적인 질문들이 또 있습니다:

i) 이 구절, 특히 이의 강력한 경고가 신자들에 대한 것인가? 대답은 예 그렇습니다. 이는 언약의 피로 거룩하게 된 사람들에 대해 말하며 이러한 사람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오직 기독교인들입니다. 고린도전서 6:9-11이 말하는바, 기독교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

거룩함과 죄의 용서받음은 믿는 자를 위해 예약된 것이며 이를 이루기 방법은 "언약의 피"입니다. (마태복음 28:26).

ii) 언약의 피로 거룩함을 받은 사람이 되돌아서 이 가장 귀한 피를 일반적인것으로 만들고 하나님의 아들을 발아래 짓밝고 성령을 모욕하는것이 가능한가? 한번 믿었던 사람이 "철회함"이 가능한가? 이 구절에서, 그리고 다른 구절에서 본바, 이것은 실제로 가능합니다.

iii) 다음 질문입니다: 구원 것이지만 그들은 그와 같은 일반적인 한 그 언약의 피 은혜의 성령으로 거룩하게 모욕하는 사람들 기다리고 있습니까? 구문에서 볼때 분명한 답은 부정적입니다.

더 나아가 다음의 구절 부분을 지적해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책의 후반부에서 우리는 죄지음과 누군가가 정말로 믿음을 떠나는 때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간단한 답변이라도 원하는 사람들에게, 이는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에서"임을 말하고자 합니다. " 짐짓 죄를 범한 죄"은 죄를 한번 지음을 의미하지 않으며, 정의 실천을 노력하지 않는한 삶에서 일련의 죄를 가짐을 의미합니다. 대신, 이가 의미하는 삶은 진리의 지식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죄를 실천하며, 습관적인 삶 그리고 죄를 삶의 방향으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말하는 바를 아는대도 행하는 이와 같은 의도적이고 습관적인 무시는 치명적이며 이와 같은 사람은 그의 구원과 관련하여 안전에 잘못된 인식속에 안식하는 대신 즉시 회개해야 합니다.

타소스 키울라초글루

(Tassos Kioulachoglou)